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케패스 전투 (문단 편집) == 그 후 == 26일에 기갑연대 3대대가 19번 도로지역의 잔적소탕에 들어감으로서 안케패스에서의 전투는 완전히 마무리 된다. 구정공세 이후 대규모 공세였던 베트남군의 춘계대공세에서 유일하게 선전한 전투가 바로 이 안케패스 전투이지만 당시 한국군의 정보분석 오판과 무리한 축차공세는 오히려 한국군의 피해를 키우게 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638고지를 처음부터 확보하지 못함으로서 적에게 감제고지를 포함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내준 문제도 있었다. 그로 인하여 베트남군은 자주 82mm 박격포와 같은 포병화력을 통해서 한국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역공을 펼치는 사례가 많았다. 실제 한국군은 베트남군의 포병공격에 번번히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했다. 게다가 적의 병력규모를 끝까지 제대로 파악을 못했기 때문에 무모한 파상공격밖에 하지 못했다. 핵심지역이었던 638고지에서의 한국군의 전술은 무모한 [[축차투입]]이었다. 게다가 이미 638고지를 제외하고 베트남군은 19번 도로지역의 안케패스 지역을 1개월 전부터 파악하고 신속하게 점령할수 있었지만 한국군은 안케패스 지역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이 되었다. 또한 역설적이지만 [[중대전술기지]]의 가치를 다시금 증명한 전투이기도 하다. 다만 공격하는 쪽이 한국군, 방어하는 쪽이 베트남군이어서 문제지. 이 전투에서 전사한 [[임동춘]] 대위(당시 중위)의 업적을 기리어 2008년부터 육군에서는 모범소대장들을 대상으로 '동춘상'을 제정하여 수여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